명성교회 애도(mourning)

이제 한국교회 장자교단은 죽었다며 이미 죽은지 80년 된 적통을 붙들고 그 몰락을 애통해하는 사람들
지금까지의 다른 세습들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그 80년전 사건을 들먹이며 이번 사건의 역사적 무게감이 얼마나 큰지 아냐며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
이런 장자교단의 몰락을 “불건너 강구경”하듯 자신들 교단의 정직함과 의로움에 안도하는 사람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듯 옆 교회 목회자의 몰락을 비웃는 또 다른 몰락한 목회자
목회가 생계의 수단인 현직 목사들에게 내적 갈등을 유발시키며 명함뿐인 장로교 목사 직분을 사임한 신학교 교수
재판에 참석했던 재판국원들의 사진을 공유하며 현대판 을사오적이라며 마녀사냥에 나서는 사람들
아직도, 정말 아직도 한국교회에 희망이 남아있다며 총회에서 총대들이 거룩한 반란을 일으킬거라고 기대하는 사람들
아, 심지어 김삼환이 찍힌 기사 사진에 죄 없는 우리교회가 배경으로 나와 억울하다며 기레기에게 항의하는 사람들까지

나 한사람 주변에만 참 다양한 인간군상이 있다.
모두가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내 신앙은 후퇴했는지 더 이상 마음 속에 이런 애정 어린 질책이나 열정이 잘 생기지 않는다. 유감스럽지만 만일 장로교단이 이번 판결에서 세습을 위법으로 규정하거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했다 하더라도, 명성교회의 공공성이 회복되거나 명성교회와 목회자의 욕망이 사그라들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김하나 목사는 민망스럽게도 본인이 만약 세습을 거절했다면 영원히 훌륭한 목사로 남았을거라는 황당무계한 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그런 발언이야말로 명성교회와 교인들, 그리고 목회자들의 현 수준을 드러내는 자의식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이럴 줄 알았다는 냉소를 보내려는게 아니다. 나도 답답하다. 실마리도 모르겠다. 다만, 명성교회 세습은 그 자체로 비판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여기까지 밀려 올 수 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문제점을 건드리고, 더욱 대중의 공감을 얻는 작업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수많은 세습과 교회 내 비리가 있었지만 이번 일 처럼 주류 언론 매체가 끈기있게 지속적으로 보도한 적도 사실 처음 있는 일이다.

교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하느님일까? 목사일까? 너와나일까? 우리 사회에 교회가 아니, 신학이 과연 필요한지부터 다시 고민하야 하지 않을까. 이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내용과 형태의 신학을 가지고 나아갈지, 그간 미천한 폭과 깊이의 민낯을 드러낸 ‘교회의 신학’을 어떻게 이 시대에 응답할 수 있는 신학으로 폭을 넓힐지. 그리고 그 교회의 신학을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까지 확장하여 ‘교회 밖 신학’을 가능하게 해야만 또 다시 주저 앉아 우는 일 따위가 생기지 않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