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거부한다

스트레이트를 보고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짧은 인생사에,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든 삼성그룹의 문제와 모순, 심지어 국정농단 사태에서 삼성에게만 면죄부를 줄 때조차 스스로에게 변화를 다짐하지 않았는데, 이번엔 왠일인지 느낌이 달랐다.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고 주변을 살폈다.
삼성 전자제품을 사지 않는 나로서는 그나마 삼성의 통제를 벗어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따져보니 그렇지 않았다.

혼수로 선물받은 전자렌지
셔츠, 지갑, 양말(빈폴)
카드, 심지어 자동차보험…
주말에 와이프와 다녀온 부산여행의 숙소도 신라스테이였음을 깨닫고
사유(思惟)가 결여된 나의 소비패턴에 대해 통렬한 반성을 했다.

빅브라더 삼성이 우리가 무감각할정도로 전 일상에 침투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삼성이라면 First라는 최면에 빠져있었던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오너가 죄지 직원들이 무슨 죄냐’
‘내수를 불매해도 이미 해외시장 매출 비중이 높다’
‘삼성 부품이 이미 대체제에도 들어가있으니 소용이 없다’
‘불매운동도 돈 있는 사람이나 하는거다’
‘삼성의 연간 영업이익이 50조다. 너 하나 해서 의미없다.’
‘LG는 뭐 낫냐 그놈이 그놈이다’

설득력이 넘치다 못해 매우 맞는 말이다.
그냥 팩트고 정답이다.
한편으로 삼성의 지배논리가 이렇게 편만하고 공고하구나란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하지만 오늘 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 거대 공적 담론이나 정의 구현을 하려는게 아니다.
이재용이 마음에 안들거나 그들이 가장 부유한 자본가 집단이어서도 아니다.

그냥…
그냥 그렇게 삼성이 세월호 유가족의 마음을 찢어놓는 일이 가슴아팠다.
세월호 유가족을 다시 마주할 자신이 없어졌다.

‘운동’의 한계를 이론적으로 잘 알았기에
오히려 선뜻 선택하지 못했던 일이었는데
뜻밖의 동기부여가 되었다.


뇌리를 스쳐가는 지인들에게 미안하다.

100을 0으로 만들진 못하겠지만,
100이 99라도 될 수 있다면
설령 그것이 여전히 100이더라도…

나의 소비기준과 목표가 단순히 개인으로서 느끼는 만족도에 있지 않고
생산과 소비 전 과정에서 비인간성을 탈피하도록 사유하고 내 스스로가 변모한다면…
그래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떳떳하게 마주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할만한 가치가 있는, 아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