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비망록

영화 <1987>을 보고 왔다

1987년 이한열에게 향했던 직격 최루탄이 29년 후 백남기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직사살수로 재현되었듯이, 광장에 모인 국민들의 힘과 에너지는 탐욕스러운 권력자를 끌어내리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되었다. 하지만 영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아니, 이것만으로는 한참 부족했다.

뜨거웠던 6월 항쟁은 야당의 분열 뿐 아니라 서슬퍼런 공안검사와 운동권 학생이 같은 정당 안에서 같은 정치 이념으로 활동하는 역사의 아이러니이자 돌연변이를 낳았다. 어디 정치인 뿐인가. 광장에서 그렇게 뜨겁게 살았던 386세대들이 내가 살아온 지난 30년간 시장에서 어떤 욕망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생각해보면, 대체 그 때의 열망은 어디로 갔는지 참담하다. 종교는 어떤가. 민주화운동을 하려면 교회로 가라는 말이 통용되던 시절, 악의 위력에 겁내지 않던 시절이 있었지만, 6월 항쟁을 끝으로 보수화의 길을 걸었다.

한 시대의 열망은 현실의 벽 앞에 이리도 쉽게 사그라든다. 이런 방식이라면 과연 지금의 열망은 앞으로 30년 후 얼마나 허망하게 망가져 있을까. 때문에 우리에겐 좀 더 끈질긴, 적극적 성찰이 필요하다. 감동과 눈물로는 충분치 않다. 왕의 머리를 잘랐다고 단두대에서 내려와 다시 노예의 삶을 사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왕의 부재 이후 발생하는 모든 정치적, 사회적, 시대적 책임을 지는 것이 민주주의다. 이 영화가 필요하다면 바로 이런 이유여서야 한다.

…어느 87년 민주화 비관주의자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