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적 성공의 의미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다가 인상적인 구절을 남겨본다.

불행하게도 진화적 관점은 성공의 척도로서는 불완전하다. 그것은 모든 것을 생존과 번식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할 뿐, 개체의 고통이나 행복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가축이 된 닭이나 소는 아마도 진화적 성공의 사례이겠지만, 역사상 가장 비참한 동물인 것도 사실이다. 동물의 가축화는 일련의 야만적 관행을 기반으로 이뤄졌고 관행은 수백 수천년이 흐르면서 더욱 잔인해졌다…양치기가 아닌 양 떼의 입장에서 보자면, 대다수의 가축화된 동물에게 농업혁명은 끔찍한 재앙이었다. 이들의 진화적 ‘성공’은 무의미하다. 아마도 좁은 상자 안에 갇혀서 살을 찌우다가 육즙이 흐르는 스테이크가 되어 짧은 삶을 마감하는 송아지보다는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한 야생 코뿔소가 더 만족해할 것이다. 진화적 성공과 개체의 고통간의 이런 괴리는 우리가 농업혁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일 것이다. 우리가 밀이나 옥수수 같은 식물의 이야기를 조사할 때는 순수한 진화적 관점이 타당할 지 모른다. 하지만 소나 양, 사피엔스처럼 각자 복잡한 기분과 감정을 지닌 동물의 경우, 진화적 성공이란 것이 개체의 경험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 종이 집단적으로 힘을 키우고 외견상 성공을 구가한 것이 개개인의 큰 고통과 나란히 진행되었다는 사실 을 거듭 확인하게 될 것이다.(p147)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평등 사상은 기독교 신앙에 기반한 사고 방식이다. 모든 사람이 신이 창조했으며 신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신앙 말이다. 하지만 기독교 신화를 믿지 않으면 그 평등의 의미는 무엇인가. 생물학에 따르면 인간은 창조되지 않고 진화했다. 진화는 평등이 아니라 차이에 기반을 둔다.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유전부호와 다른 환경에 노출된다. 그래서 각기 다른 특질을 발달시키며 그에 따라 생존 가능성에 차이가 난다. 따라서 평등한 창조란 말은 각기 다르게 진화했다는 의미로 표현되어야 한다.(p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