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내년에도 계속 해야 하는가

내년에도 교회 봉사를 계속 해야 하는가? 연말이 되면 한번쯤 품게 되는 물음이다. 특히 주일학교 교사들은 피할 수 없는 고민이며, 오랜시간 눈물과 땀을 흘린 열심 있는 교사들조차 여지없이 고민하게 하는 물음이다. 나도 다니는 교회에서 몇 년 동안 중고등부 교사로 봉사중이다. 처음부터 오래도록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교사가 많이 부족하기도 하고, 어디나 그렇듯 교역자의 권유에 못이겨 한해 한해 연장을 거듭하고 있다. 나도 중고등부 시절을 겪어 오고, 오랜시간 중고등부 교사를 하며 느끼는 것은 교사들의 헌신이 놀랍고 경이적이란 점이다. 10년 20년을 섬기는 모습은 말할 것도 없고, 한번 뿐인 여름휴가를 수련회에 맞춰 사용하거나 사비를 털어 아이들을 챙기는 모습은 숙연할 정도이다. 나의 교회가 이렇게 건강하게 유지되고, 균형 잡힌 청년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길러낼 수 있었던 동인이 교사들의 헌신이라는 점은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니, 한국 교회가 수많은 병폐에도 계속해서 다음 세대가 자라나는 동력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교사는 ‘희생’, ‘희생적 헌신’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형성되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의문이 발생한다. 과연 교사의 본질적인 역할은 희생 또는 희생적 헌신인가? 이러한 기조가 2016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가?

교사는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기독교 신앙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배우고 전달하기 때문에 성경을 가르치는 일은 필수다. 과자 사주고 함께 놀아주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성경을 가르치는 일은 교회 교사만이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기에 현재 교회 교육에는 역설적으로 가르침과 배움의 과정이 부재하다. 피아노 학원을 10년 다니면 피아노 잘 치고 수학 학원 10년 다니면 수학을 잘 하는게 당연한데 교회를 20년 다닌 청년, 청소년들이 성경을 잘 모른다.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엔 현실이 너무 열악하다. 주일학교 현장은 무엇을 요구하고 기대하기조차 어려운 현실이다. 그래서 자신이 맡았던 직분을 어떻게 내려놓을까 통밥을 굴리고 교환학생, 워킹홀리데이 등 적절한 명분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는 것이다. 내년에는 쉬겠다는 교사와 내년까지 한해만 더 하자는 담당교역자간의 실랑이는 해마다 반복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교사를 즐겁게 지속하면서 교사의 본래된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까?

먼저 교역자의 올바른 지도 방향이 제일 중요할 것 같다.

언젠가 한번 ‘숫자가 중요하진 않지만 숫자가 중요합니다’ 라는 교역자에게서 얘기를 들었다. 주보에 나오는 아이들의 출석 숫자가 꼭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결국은 아이들의 신앙 생활의 지속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일단 억지로 교회에 나오기만 한다면 나도 모르게 믿음이 생기고 참된 제자로 빚어지고 있는 것일까? 축구에서 1골을 먼저 넣고 이제 11명이 수비만 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그런 착각의 믿음 아닐까? 지금의 교회 교육은 온전한 신앙적 인격을 성장시키는데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양적 성장을 위한 구원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기형적 성장을 가져오게 되었다. 모든 기준은 출석과 연결이 된다. 교역자들이 교사들을 벼랑 끝에 내모는 이유도 아이들의 출석 때문이고, 아이들의 출석률이 그 교사의 행동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며, 출석률이라는 지표 앞에 교육의 모든 것을 양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억지 노력과 강제적 권면은 당장의 목표는 성취할 수 있을지언정, 장기적으로는 교사들을 혹사시키고 주일학교가 소모되는 공간이라는 인식을 주입시킨다. 게다가 교사들은 회사원 같은 피고용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압박에 적응하기 어렵다. 교역자의 강요에 못이겨 몇년간 간신히 버티고 있는 교사들과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기 위해 봉사하는 교사들의 상황과 마음을 교역자는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유행에 편승한 프로그램들도 모두 없애면 좋겠다. 수련회TF, 친구초청주일TF, 야외예배TF…교회가 무슨 행사 대행 업체도 아니고…방학, 휴가를 바쳐 열심히 뛰었더니 돌아오는 건 하나님이 복을 주실거라는 책임 전가와 다음 TF 팀장으로의 내정 소식뿐이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들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양적 성장론에 맞춰진 교회 지도 방향은 주일학교 설교에도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은 명동 길거리만의 구호가 아니다. 아직도 주일학교 설교와 수련회 설교는 교회 안다니면(예수님 안믿으면도 아니다!) 지옥 가고, 교회를 다니면 천국 간다고 아이들에게 주입시키는 수준을 못 벗어난다. 구원의 주권이 완전히 하나님께 있다고 믿는 우리 교단 전통에서는 더욱 기가 찰 노릇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아이들에게 교회의 출석여부가 구원을 결정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 신앙의 목표가 천국에 가는 것이라는 불완전한 목표를 심어줄 수 있다.

교사의 적극적인 학습 노력도 필요하다.

읽고 사고하고 깨닫는 과정 없이 교사의 역할을 맡겠다고 하는 것은 교사의 중요성과 의미를 너무 간과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다. 지식의 전달이 기독교 교육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지식 없이 가르칠 순 없다. 개인의 영성과 함께,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해서는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학교에서는 국가고시에 준하는 검증된 제도가 있는데, 교회에서는 아무나 교사를 시키는 무책임한 태도가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다. 개인의 사례로서 나는 2년 전부터 중등부에서 별도의 심화반을 조직해 한국 기독교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오고 있다. 나도 처음에는 교사라는 직분에 대한 어려움과 현실의 장벽에 많이 낙담했는데, 이 심화반을 통해 그런 부분을 많이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물론 수업을 준비하는 것은 힘들고 어렵다. 끊임 없이 배우는 데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며 애를 써야 하고 학생들의 배경, 환경, 정서 등에 민감한 대처를 해야 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배움의 기쁨이 있고, 항상은 아니지만 가끔씩 학생들도 진리를 가르치려는 교사의 진정성에 큰 감동을 받기도 한다. 끊임없이 배우고 가르치는 것만이 교사도 살고 학생들도 사는 길이라는 생각에 점점 확신이 생기고 있다.

교역자와 교사간의 관계 설정도 중요하다.

한국 교회는 교역자 중심으로 굴러간다. 교역자의 말 한마디가 그 공동체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겠지만, 맡겨진 책임이 큰 자들이 비판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가 된다. 주일학교 현장에서 교역자는 교사나 부장보다 더 많은 비판에 노출되어야 한다. 누군들 비판이 달갑겠나. 하지만 그게 자신도 살고 교회도 사는 길이다. 감히 주의 종을 비판하냐는 망상이나 볼멘소리를 하는 교역자가 있다면 그 공동체는 살기 글렀다. 반면에 교사는 비판은 커녕, 무조건적인(Unconditional) 양육과 돌봄의 대상이어야 한다. 내가 교사라서 이렇게 편향적으로 얘기하는게 아니라 실제로 정말 이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교사의 실수가 있더라도 질책을 하거나 실망을 표현하면 안된다. 그건 정말 자살 행위에 가까우며, 제대로 된 해결 방법도 아니다. 교역자는 기도회 나와라, 심방해라, 문자해라 등등 교사들에게 요구하는 요구사항을 줄이고, 그 시간에 교사들이 회사에는 별 일이 없는지 가정에는 별 일이 없는지 요즘 걱정과 기도제목은 어떤게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무엇보다 그들의 얘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많은 아픔이 있지만 여전히 신앙의 표현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에 공감하고 그 마음을 헤아려 주어야 한다.

지금의 주일학교가 하는 모든 이벤트 중에 불필요한 것은 거의 없다. 어쩌면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역자가 교회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위상을 고려했을 때 지금의 수준도 벅찰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질문하고 싶다. 지금의 방식이 유일한, 최선의 방법일까? 정답은 없다. 개교회의 상황에 맞게 좋은 모델을 만들어 내야 한다. 프로그램과 각종 시대적 묘수에 기대는 것이 아닌 가르치는 교회와 듣는 교회로서의 교육적 사역을 감당하는 모델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