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청년 전태일

경기도 남양주 모란공원에 있는 전태일의 묘비명이 ‘기독청년 전태일’이라는 사실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은 얼마 되지 않을것 같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신실했던 사람이었고, 쌍문동에 위치한 창현교회의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가시적 교회에도 깊이 헌신했었다고 본다.

11월 13일은 자신의 몸을 불살라서 불의에 저항했던 전태일 열사가 분신항거한지 45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가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치룬 평화시장에서 머지 않은 종로 5가 ‘버들다리(전태일다리)’에는,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라고 외치던 그의 숭고한 모습의 동상이 남아있다.

내가 좋아하는 신앙의 위인이 있다면
위대한 용서와 사랑를 보여주신 작은 예수 손양원,
진짜 신앙을 추구했던 기독교적 민족주의자 김교신,
그리고 요한복음에 쓰여진대로 한 알의 밀알로 죽어 많은 열매를 맺은 전태일이다.

아직도 전태일 평전을 처음 읽었을 때의 그 감동을 잊지 못한다. 나도 기독교인이어서 그런지, 같은 신자로써 그의 한없이 아름답고 숭고했던 삶은 늘 나를 일깨운다. 그래서 나는 전태일 평전을 전태일 복음서라고 부른다. 인간해방과 사회개혁을 위한 그의 투쟁도 위대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투사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억울할 정도로 그의 진실되고 고결한 삶과 인품이 더욱 감동적이다.

이번 주일에 교회 중등부 학생들과 [기독교 역사반] 수업을 하면서 이 내용을 나누려고 한다. 기회가 되면 지금 하는 히스토레에서도 전태일의 신앙에 대해 가르치고 배우고 나누게 되는 날이 오길 기대하고 또 준비하고 있다. 단순히 미디어를 통해 11월에만 부활하는 그의 사상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가 원하던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참고서적 : 전태일 평전, 조영래, 돌베게

1부 어린시절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런 환경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전태일이 그 지독한 가난과 서러움 속에서도 절망하거나 타락하지 않고 당당하고 정의롭게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험난한 생활에서 비롯된 인간에 대한 사랑과, 그 사랑에서 비롯된 사회개혁의 높은 꿈과 사명감 때문이었다(37-38p)’

‘전태일의 정신적인 성장과정 가운데에서 이 당시에 이미 자신을 거부하는 ‘부한 환경’의 현실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 현실과 싸워 이겨려는 분명한 의지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가 남들처럼 고등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을 슬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현실이야말로 가장 좋은 교사다. 그 현실의 가장 깊은 질곡 한가운데서 몸부림 치면서 자기의 심장으로 느끼고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었던 사람이야말로, 교과서의 해설이나 권위자의 암시를 통하여 왜곡되는 일이 없는 현실의 벌거 벗은 모습을 생생히 본 사람이야말로 현실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자신의 인간성을 가장 열렬하게 지킬 수 있다 (67p)’

2부 평화시장의 괴로움 속으로

1) 평화시장의 노동자들의 하루 작업시간은?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11시까지 1일 14~15시간 작업했습니다. 이 이상의 야간작업도 허다했고 심한경우 사흘씩 밤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휴일은 매달 첫 주일과 셋째 주일 2일만 쉬었습니다. 이는 국제 근로 기준의 2배에 해당하는 시간입니다

2)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월급은?
재단사는 15,000원에서 30,000원 사이였고, 재단보조는 3,000원에서 15,000원 사이였습니다. 미싱사는 7,000원에서 25,000원 사이였는데, 미싱사 보조인 시다는 1,800원에서 3,000원 사이였습니다. 여성 시다가 1일 평균 14시간 일하고 하루수당으로 70원을 받았습니다. 14시간 작업에 하루 수당 70원이면 1시간당 얼마를 받은거죠? 당시 신문 1부 가격이 20원이었는데, 한시간 일해도 신문 하나 살수 없었습니다

3)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연령별 직책은?
재단사가 22세에서 50세, 재단보조와 점원이 18세에서 25세, 미싱사가 13세에서 38세였습니다. 미싱사 보조인 시다는 12세에서 21세 사이였습니다

4) 평화시장 공장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나?
10,000명 이상을 수용하는 건물이었는데, 환기장치는 1개도 없었습니다. 평화시장의 400여개 공장 가운데, 세면을 할 수 있는 상수도 시설은 3곳으로 1평 정도였습니다. 단성사라는 회사는 건평 8평에서 종업원 32명이 일했는데, 다락 높이가 1.5m였습니다. 창별사라는 회사에서는 건평 2평에 종업원 13명이 일했는데, 다락높이는 1.6m였습니다. 단성사는 1평에서 4명이 일했고, 창별사는 1평에서 6.5명이 일했습니다.

5)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건강상태는 어떠했을까?
재단사는 100% 전원이 신경성 소화불량, 만성 위장병, 신경통 등을 앓았습니다. 미싱사는 90%가 신경성 소화불량, 신경성 위장병, 류마티스, 신경통, 폐병 2기 등을 앓았습니다. 시다는 평균 15세 어린이들로서 하루 14시간의 작업을 몇년만 하고 나면, 모두 신경성 위장병, 신경통, 류마티스를 앓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평화시장의 환경에서 전태일은 두 가지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는 미싱사 처녀가 일을 하다가 각혈을 하고 폐병 3기로 죽은 사건입니다. 이를 통해 전태일은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고민하게 되고 ‘근로기준법’이라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됩니다. 두번째 사건은 전태일 자신이 재단사로서 몸이 아픈 어린 시다를 도와주다가 업주에게 해고를 당한 사건입니다. 전태일은 이때부터 ‘바보회’를 조직하고 밤마다 ‘근로기준법’을 공부하게 됩니다.

3부 바보회의 조직

‘우리는 당당하게 인간적인 대접을 받으며 살 권리가 엄연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태껏 기계 취급을 받으며 업주들에게 부당한 학대를 받으면서도 바보처럼 찍소리 한번 못하고 살아왔다. 그러니 우리 재단사들의 모임은 바보들의 모임이다. 이것을 우리가 철저하게 깨달아야 하며 그래야만 언젠가는 우리도 바보 신세를 면할수 있다. … 재단사 모임을 시작하면서 그는 나이가 든 선배 재단사들을 찾아다니며 협조를 청하였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뭘 안다고 너희가 그런 엄청난 일을 벌이려 하느냐?”고 막으면서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설치는 놈은 ‘바보’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좋다. 우리가 한번 바보답게 되든 안되든 들이박아나 보고 죽자. 이것이 그의 제안의 내용이었다. (152p)’

‘전태일과 그의 친구들은 ‘똑똑한 인간’, ‘약은 인간’이 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바보’라고 선언하였다. 무엇인가 마음을 치는 대의의 부름이 있어 고난의 가시밭길을 스스로 나서는 사람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바보이다. … 인간을 비인간으로 만들고 있는 사회는 인간다운 삶을 되찾으려고 일어서는 사람들을 향하여 조소를 던지고 그들을 바보라고 낙인찍는다. 노예사회에서 벗어나 진정한 인간이 되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을 비정상적으로 취급한다. … 전태일과 그의 친구들이 택한 길은 인간의 길이었다 (155~157p)’

전태일은 설문지를 돌려가며 평화시장의 현실을 고발하지만, 근로감독관과 노동청에서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 때 전태일은 노동자의 편에 있어야 할 근로감독관과 노동청이 기업주의 편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 부조리한 현실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면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모든 투쟁방법을 철저하게 연구하고 재검토해나갔습니다

4부 전태일 사상

1) 전태일 사상은 밑바닥 인간의 사상이다.
밑바닥 인간에게도 ‘사상’이 있단 말인가? 그렇다. 있다. 중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밑바닥 인간에게도 사상은 있다. 전태일 사상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첫 번째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 밑바닥 인간인 전태일은 ‘소외’ 라는 어려운 철학 용어를 알지 못하였지만 이렇게 말했다. “사실 그 사람이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세. 그 때에 절은 모자가 하고 있는 걸세” 밑바닥의 체험 속에서, 시대의 모순에 못 박혀 존재의 극한 상황에 선 인간의 모습을 통하여 전체 인간 조건을 적나라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전태일에겐 인간의 현실에 대한 인식뿐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 또한 관념과 추상의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구체적이고 생생한 체험의 세계였다. (197p)

2) 전태일 사상은 ‘각성된’ 밑바닥 인간의 사상이다.
그것은 오랜 침묵에서 꺠어나서 이제껏 현실이 자신에게 강요해왔던 가치관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오직 스스로 인간적인 체험에 의거하여 그 자신의 가슴으로 느끼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주체적인 인간의 사상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거꾸로의 거꾸로, 사회의 거꾸로 된 가치관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거꾸로 뒤집어놓는다. 그것은 자기비하에서 자존으로, 비굴에서 긍지로, 공포와 위축에서 분노와 용기로, 의존과 자학에서 자주와 해방으로, 체념과 침묵에서 비판과 투쟁으로 전환하여가는 사상, 노예에서 인간으로 거듭나는 민중의 사상이다.(198p)

3) 전태일 사상은 기존 현실에 대한 철저한 비판으로 인하여 완전한 거부-완전한 부정의 사상이 된다.
우리는 그가 현실의 ‘덩어리’속에 뭉쳐지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하고 있는 데에 주목하여야 한다.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참된 희망과 관심과 가치를 존중하지 아니하고, 그를 단순히 자기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기 위하여 야합하고 있는 기존 사회의 덩어리, 그것은 완전히 무가치한, 완전히 부정되어야 할, 완전히 추악한 덩어리였다. 지금 그에게 참으로 가치있는 일은 그 ‘덩어리를 전부 분해’해버리는 일 뿐이었다.(201p)

4) 전태일 사상은 근본적인 개혁의 사상, 행동의 사상이다.
그는 왜 행동하지 않을 수 없었던가? 그것은 모든 인간이 서로서로가 서로서로의 ‘전체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한 인간에게라도 적대적인 현실은 곧 모든 인간에게 적대적인 현실이며, 한 사람의 이웃의 신음소리는 곧 전태일 그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아픔이었다. 그리하여 한 인간이라도 ‘부스러기’로 밀려나는 일이 없는, 한 인간도 남김없이 그 인간적인 관심을 존중받는 질서 - ‘모두가 용해되어 있는 상태’가 이룩되기 전까지 그의 행동은 그칠 수 없었다(201p)

5부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책을 가슴에 품고 내려왔다. 전태일이 몇 발자국 내딛었을까? 갑자기 전태일의 옷 위로 불길이 확 치솟았다. 불길은 순식간에 전태일의 전신을 휩쌌다. 불타는 몸으로 그는 사람들이 아직 서성거리고 있는 국민은행 앞길로 뛰어나갔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그는 몇 마디의 구호를 짐승의 소리처럼 외치다가 그 자리에 쓰려졌다. 입으로 화염이 확확 들이찼던 것인지, 나중 말은 똑똑히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으로 변하였다. 이렇게 근로기준법의 화형식이 이루어졌다(300p~301p)’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 치오니
하나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1970년 8월 9일 일기에서